Life is good!
창세기 1:1–5, 26–31
정성호목사 (2025.06.22)
1. 좋게 만들어진 세상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창조하시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상과 사람에 대해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말씀을 여러차례 하신다.
우리는 본래 아름답게 창조된 존재들이다.
“좋다”는 표현의 어원은 히브리어 tov 인데,
언어적인 뜻은 “좋다, 선하다, 아름답다, 기쁘다, 유익하다” 이지만,
히브리어 사상에서 tov는 “어떤 사물이 제자리에 있고, 본래의 목적을 잘 수행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창세기는 그 tov를 사용하면서 앞에 “하나님이 보시기에”라는 설명을 붙였다.
하나님의 주관적인 평가이며 선언인 것이다.
선하다, 좋다, 아름답다! 라는 기준은 하나님께 달려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평가 앞에 서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야 하고, 그 상태가 tov “좋다”는 상태이다.
2. “충만, 정복, 다스림”의 의미
하나님은, 창조물들이 “좋음”을 보존하고 누릴 수 있는 명령을 주셨다.
먼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거기에 더해 두 가지 명령을 더 주셨다: “정복하고, 다스리라”
이 명령을 잘 수행함으로써 우리의 “좋음”을 보존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이다.
1) “생육하라”는 히브리어 “파라”인데, 자손을 낳다, 증가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단순히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번식을 뜻함이 아니다. 우리는 죽이는 자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자로 창조되었다.
그래서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은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는 죄악이 된다.
2) “번성하라”는 히브리어 “라바”인데, “증가하다, 풍성해지다.” 라는 뜻이다.
그러나 단순히 양적인 확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순히 생명을 살리는 일(생육하라)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온 세상에 퍼져 나가도록 전파하라는 의미도 포함된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창조된 존재다.
3) “충만하라”는 단어는 “말레’인데, “가득 채우다” 라는 뜻이다.
사람의 숫자로 사람들이 거할 공간 즉 바다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라는 명령인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가득 채워 나가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그렇게 명령받은 존재다.
3. 위 세 가지 명령을 삶에 적용하기
1) “충만”
빈 곳 없이 가득 채워진 상태가 “충만”.
충만함의 결핍은 공허함. 1:2은 창조 이전의 상태를 가리켜 “혼돈, 공허, 흑암”이라고 설명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의 삶을 충만함으로 채우지 못하면, 공허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충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삶의 공허함을 없애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질 때 우리는 충만해 진다.
사람들이 하는 실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족해서 생긴 인생의 공허함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다 보니,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도 공허함을 느낀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영적으로 갈급 해 진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충만해 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진정으로 번성하고 충만해 질 수 있다.
2) “정복.”
창조 이전의 상태가 “혼돈, 공허함, 흑암”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정복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셔서 “빛이 창조”되었다. 빛이 창조된 순간부터 “혼돈, 공허함, 흑암”이 물러갔다.
빛은 혼돈과 공허함과 흑암을 정복하는 힘이다.
우리가 빛을 잃어버리면, 혼돈과 공허함과 흑암의 무질서함이 우리를 정복하게 된다.
우울함, 허무함, 반복되는 절망과 두려움에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라고 말씀한다.
l 요한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l 요한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l 요한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l 요한1서 1:5이하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하는 것이요…”
l 마태복음 4:16은 예수님의 탄생을 설명하면서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큰 빛을 보았다”라고 말한다.
3. “다스림”
다스린다는 것은, 끌려가지 않고 주도하는 것이다.
환경과 상황과 여건에 끌려 다니는 인생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행한 것인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 운명, 먹고사는 문제, 죄와 유혹, 고난에 끌려다니지 말고 영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사람들은 자주 환경의 노예가 된다. 경제적인 어려움 앞에서 좌절하고, 인간관계에서 절망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마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작은 배와 같은 모습으로 산다.
성도의 마지막 모습. 정 권사님의 임종을 보면서.
질병은 우리에게 고통과 두려움과 공포를 주지만, 마지막까지 예배와 기도와 찬송으로 성도의 모습을 지키면서, 천국과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스린다.
그것이 다스리는 자의 모습. 우리 모두 마지막 순간에 그럴 수 있기를.
운명은 사람을 지배하고 싶어한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느냐? 어떤 부모를 만났느냐? 어떤 경제적 여건 속에서 자랐느냐? 어떤 신체조건을 가졌는가? 라는 환경과 조건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싶어한다.
죄와 중독의 영은 사람을 평생 지배하고 싶어한다.
우리 성도들의 인생은 외적인 힘이 결정정하는 대로 끌려려가는 운명에 맡겨진 존재로 창조조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노예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셨듯이, 죄와 사망의 노예된 우리들도 십자가를 통해 출애굽 시키셨다. 그것이 구원이다.
구원의 힘은 우리를 자유케 한다. 우리를 다스리려는 “혼돈과 공허함과 흑암”으로 부터 자유하게 한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복음의 힘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과 유혹을 다스린다.
삶에 떠밀려 살아가기 보다는, 사명에 이끌려 살아갈 때, 우리는 승리자가 된다.
4. 결론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tov, 심히 좋게 창조 된 존재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