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시는 하나님

창세기 2:7, 18-25

정성호 목사 (2025. 6.29)

1.   하나님은 흙을 생명체가 되게 하셨다.

창조의 이야기를 읽었다. 흙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 주실 때 비로소 생명체가 되었다.

동물과 새들도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오직 사람 만이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고

둘째, 하나님의 생명의 숨을 직접 받았기 때문다.  

결국 사람이 특별한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계 안에서 흙은 생명체로 변화되었다.  

nobody 였던 존재가 somebody가 되었다. 이것은 단순환 변화 Change 가 아니라 변환 Transformation 이다.

마치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단순한 외형적인 change 가 아니라, 기어 다니던 존재가 날아다니는 존재로 완전히 새롭게 transform 됨과 같은 것이다.

성경 속 대표적인 인물은 [바울] 이다. 그는 원래 사울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이 되었다. 그는 예수님과의 관계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고, 완전히 새로운 삶의 목적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면 우리는 언제라도 다시 흙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2.    그런 창조의 하나님께서 이름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후 “아담”이라 부르셨다.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도 “아담아”라고 부르셨고,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은 후에도 여전히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부르셨다.

하나님은 아담을 언제나 한결같은 사랑으로 소중하게 여기셨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아담이 소중하게 취급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담에게 있지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있다.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다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부르심에는 정죄가 아닌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이름을 부르심을 통해 표현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아담에게도 이름을 지어서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 주라고 하셨고, 그가 이름을 어떻게 지어 부르는지를 지켜 보셨다.

하나님은 왜 지켜 보셨을까? 이름을 부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Sparrow 라는 새가 있다. 스패로우는 작은 날개를 파다파닥 거린다 라는 뜻이다. 작고 흔한 새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새를 참새라고 부른다. ‘참’이라는 말은 ‘올바르고, 진실하다’ 즉, ‘진짜’라는 뜻이다.

한국사람들은 작고 흔한 새에게 “너는 진짜 새야, 너는 소중한 존재야” 라고 불러 준 것이다.

이처럼 이름은 존재의 가치를 부여한다. 이것이 이름의 힘이이다.

 

들에 핀 모든 식물들은 [잡초와 꽃]으로 구분되는데, 그 기준은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 에 있다고 들었다.  

이름(학명)이 붙여지면 꽃이고, 없으면 잡초이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풀이었던 거다.

시인 김춘수는 [꽃] 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사람도 마찬가지! 누군가가 진심으로 이름을 불러줄 때, 진정한 자아가 깨어난다.   

 

4.   아담을 부르시던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의 이름도 부르셨다.

[아브라함]

하나님은 대대로 우상을 만드는 가정에서 태어나, 우상의 나라에서 성장한 아브람을 불러내셔서 믿음의 조상의 삶을 살아가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처음으로 부르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그 부르심에 반응하며 살아가자 아브람의 이름을 새롭게 바꿔서 불러주셨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라”

아브라함은 “열방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모세]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야, 모세야” 부르셨고, 이후로 모세는 도피생활을 하며 양을 치던 생활을 청산하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민족을 구원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너를 이름으로도 안다”라고 하셨다 (출 33:17).

[이스라엘 민족]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는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셨다. (이사야 43:1)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불러주시는 이름에서 방향을 찾았고, 길을 찾았고, 의미를 찾았았다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이름에 걸맞맞게 살아가고 싶어진다.

5.   그런 하나님께서 이제는 우리의 이름도 부르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한다." (요한 10:3)

하나님은 오늘 이 예배 중에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너는 사랑스러운 존재, 내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란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실 때,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다시 태어납니다.

이름없는 “흙”이었던 존재가 “생명체”가 되고, “하나의 몸짓”이 “꽃”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다. 그 ‘사랑’을 받을 때 우리는 ‘사랑스런’ 존재가 된다. 

 

십자가에 위에서 당신의 제자인 요한의 이름을 부르셨던 예수님은, 그 십자가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라 …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라” (눅22)

그것을 바울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전 16:3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이름도 부르고 계시는 것이다. 그 부르심이 있기에 우리는 구원받은 존재, 영원한 생명을 받은 존재가 된다.

 

6.  이제는 우리가 타인의 이름을 부를 차례이이다.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짓고 부르는지 지켜 보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아내를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아담이 아내를 어떻게 부르는지를 지켜 보신다.  

아담은 아내를 이렇게 부른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이 인류최초의 아내의 이름이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출산을 허락하신 후부터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이브”라고 고쳐부른다.

이브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 산 자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l  처음에 부르던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이름은 사랑의 고백이었다면,

l  “모든 자의 어머니”라는 나중의 이름에는 존중과 존경, 그리고 신앙의 고백이 담겨진 이름이이다.

 

오늘 이 예배를 마치고 우리가 가정으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우리가 배우자를 어떻게 부르는지, 자녀들을 어떻게 부르는지를 지켜 보실 것이다.

l  우리가 배우자에게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이라고 부를 때, 그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l  우리가 자녀를 부를 때, 성도를 부를 때, 우리의 말 속에 사랑과 존중을 담는다면, 가족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시는 아름답고 필요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l  “당신은 우리 교회의 귀한 분입니다” “당신은 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런 말이 서로의 존재감을 높여주고, 더욱 아름다운 존재가 되게 하고, 더욱 노력하는 존재가 되게 할 것이다. 

 

결론: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부르는지를 보신다!

하나님은 이름을 부르심으로, 단순한 몸짓은 꽃이 되게 만드시고, 흙은 생명이 되게 하신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고,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지를 지켜보신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름을 통해 서로를 더 아름답고, 더 사랑받는 존재로 세워가는 일에 동역자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를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도 불러 주시기를 소망하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잃어버린 영혼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소망하자.

이 일에 우리가 메신저가 되고, 우리 예빛교회가 확성기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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